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시의 해석
전체적으로 유장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연마다 후렴시행이 따라와 음률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지용이 1923년 3월에 쓴 「향수」이다.
잔물결 반짝이며 실개천이 느리게 흐르는 곳, 옥답을 일구어주는 착한 얼룩백이 황소가 앉아 쉬며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늙으신 아버지가 편안히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고향에는 넉넉한 인심과 잔잔한 평화가 있고 때묻지 않은 꿈과 동경의 유년시절이 있다.
먼 신화와 전설을 그대로 간직한 순결한 이 땅, 짓밟히지 않은 우리의 향리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어린 누이, 앞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땋아 귀 뒤로 치렁치렁 넘긴 어린 누이가 있다.
누구도 거뜰떠보지 않는 노동에 시달리지만, 지친 마음을 푸근하게 받아주는 늘 편안한 아내가 있다.
그 살붙이 피붙이들이 도란거리며 욕심 없이 사는 초라한 지붕 위로 성긴 별들이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간다.
「향수」의 마지막 연에는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짓밟혀 순결을 빼앗긴 조선 땅, 고향마을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엷은 근심이 깔려 있다.
그러나 화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조국,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박하고 순결하게 살아가야 할 향리 그곳을 잊지 말자고, 우리 민족 삶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고, 지용은 일본놈들이 무서워 조선시를 쓰지 못하는 시대에 민족어와 풀뿌리말을 찾아내고 만들어 갈고 닦아 모국어를 현대화시킨 민족시인이다.
이 시에서는 해설피 「참하」 함추름 「휘적시든」 서리 까마귀 등이 보이는데, 지용은 시어 선택에 있어서 어형을 변화시킨다거나 두 단어를 합성한다거나, 양성모음으로 바꾸어 쓴다거나 또는 우리말에 새롭게 의미를 첨가하여 강조하는 등의 언어적 기법을 최대한 활용한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