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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한국 시단을 주도한 거장시인 정지용의 기행문 소개
정지용의 재지(才智)는 산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그의 산문으로는 국토기행에서 산생된 기행문류와 시론, 추천평 등을 소개합니다.
작품내의 표현된 문법 및 단어는 현대의 문법 및 단어와 다소 차이가 있으니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예 : 해ㅅ살 → 햇살
예제5
남해오월점철(南海五月點綴)10 - 통영(統營)3
통영읍안 뒷산 밑 명정리(明井里)라는 한적한 동리에서도 뒤로 물러나 예로부터 유명한 일정월정(一井月井) 두개의 우물물이 한곳에서 솟는다.
이를 합하여 명정(明井)이라 이른다.
明井 우물물이 맑고 달기 비와 가물음에 다르지 않고 수량이 풍족하기 읍면을 마시우고도 고금이 일여하다.
우리는 먼저 손을 씻고 이를 가시고 시인 청마 두준 두 벗의 안내로 명정에서 다시 올라 동백꽃 고목이 좌우로 어우러진 길과 석계단을 밟는다.
역대 통제사들의 기념비석이 임립한 충렬사(忠烈祠) 정문에 든다.
한 개의 목공옛품과 같이 소박하고 가난하고 아름다운 중문에 든다.
감개무량이라고 할가. 우리는 미물과 같이 어리석고 피폐한 불초 후배이기에 설다고도 할 수 없는 눈물이 질금 솟는다.
살으셔서 가나하시었고 유명천추 오늘날에도 초라한 사당에 모시었구나!
웬만한 시골 향교보다도 규모가 적고 터전이 좁은데 건물이 모두 적고 얕어 창연하다.
인류역사상 넬슨 이상의 명 제독인 우리 민족 최대의 은인 지충 지용의 충무공 이순신의 충혼 영령을 모시기에는 너무나도 가난한 사당이다.
유명한「맹산(盟山)」「서해(誓海)」의 목각 대액(大額)이 좌우로 사념 망상 일체를 습복시키는 사당 정전문이 신엄하게 열린다.
우리는 분향하고 재배하되 과연 이마가 절로 마루바닥에 다었다.
이대로 수시간 배복하기로 우리는 마음 속속드리 에누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종교적 신앙 혹은 사생관 영혼유무관에서 전해온 여러 종류의 의식배례를 떠나 단 한가닥 민족적 통절한 실감에서 대충무공께 배복하기에 조금도 에누리가 없어진다.
우리는 일어나 영위좌우 전후로 키를 펴고 돈다. 절을 마치고 난 어린 손자가 자애로운 할아버지 무릎과 수염에 가까이 굴 듯이, 명나라 천자가 사당에 바치었다는 몇개의 도검과 기치를 본다.
사당문을 고요히 닫고 나와 석계에 앉아 멀리 한산도를 조망한다.
충무공은 순국하시고도 이렇게 겸손한 사당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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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