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이원면 개심리
개심리는 원래 이남면(利南面) 개심리(開心里)라 불리어 왔으며 지정(池亭)과 의평(義坪)을 관할하였으나 후에 모두 분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이름유래
영동군 양산면에 고조골이란 지명이 있는데 임진왜란을 피하여 고씨와 조씨가 피난을 와 정착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 후 고씨는 양산으로 조씨는 가심이로 나와 정착한 후 양주조씨(楊州趙氏) 집성촌이 되었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이남면 개심리에 116호가 살았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문평(文坪)마을이 분구되어 72호가 남았다.
- 1914년 : 행정구역 일제 조정 때 북개리. 남개리, 장항리, 계촌리의 일부를 합하여 개심리라 하여 이남면(伊南面)에 소속 되었다.
- 1929년 : 이원면(伊院面)에 소속되었다.
- 1955년 : 개심저수지가 완공되어 제일 큰 북개리가 수몰되어 없어졌다.
마을이야기
장왜 또는 장화라고 부르던 마을은 남개와 북개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북개가 수몰되어 주민들은 사방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저수지 윗부분에 자리잡은 남개는 1997년에 문화마을로 지정되어 주택, 도로 등이 잘 정비된 명실상부한 문화마을이다. 약 360여년 전에 진주강씨 한제처사(寒齊處士)가 정착한 세거지이다. 주변에 도가실로 가는 구수골, 대성산으로 가는 큰장왜골, 작은장왜골, 마을 뒤에 장등산이 있다. 북쪽에는 개심저수지 이며, 저수지 둑 도로 옆에 양주조씨 재실이 있다. 개심저수지 아래 북쪽에 자리잡은 노루목은 화수정이 서 있는 대성산 동록의 지맥을 잘랐다는 전설과 잘린 부분이 노루목 고개이며 마을이름도 노루목이 되었단다. 원래 38호가 살았으나 이주민들이 정착하여 50호가 넘는다고 한다. 서쪽 산기슭에 가심이라고 부르는 소류지가 있으며 장화소류지도 있다.